Korean War Legacy Project

Jun Hyun Han


Jun Hyun Han’s full interview video is available for viewing. A primary review, which will include the creation of a bio and highlighted clips with summaries, is forthcoming. Please check back for updates.

Video Transcript

현: 한준현이고요.

Hyun: I’m Han Jun-Hyun.

우: 네.

Woo: Yes.

현: 저는 1932년 12월 28일생입니다.

H: I was born in December 28, 1932.

우: 네.

W: Yeah.

현: 태어나기는 서울입니다. 서울 종로 공릉동이요.

H: I was born in Seoul, Gongreong-dong, Jong-ro, in Seoul.

우: 네.

W: Ok.

현: 그리고 저희 가족사항은 어머니, 옛날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계셨고 형님이 있었고요, 누님이 있었고, 그리고 누이동생 둘이 있었고. 그래서 오남매였습니다.

H: And, about my family, I had mother, father, older brother, older sister, and two younger sisters. So we were five siblings.


현: 근데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저희 막냇동생하고 저 둘밖에 없어요. 막냇동생은 여기서 살고 있고요. 지금. 어머니, 아버진 다 돌아가시고..지금 현재 다 그렇습니다.

H: But now except for me and my youngest sister, the rest passed away. She lives here and my mother and father passed away, currently.

우: 네.

W: Ok.

현: 그리고 학교는 음.. 도상 나왔습니다.

H: About school… I graduated commercial high school.

우: 도산이요?

W: Commercial high school?

현: 도상. 경기도상.

H: Yes, Gyeonggi Commercial High school.

우: 경기도상.

W: Gyeonggi Commercial high school.

현: 네.

H: Yes.

우: 네.

W: Ok.

현: 왜정 때부터 있었거든요.

H: It had been since the time of Japanese rule.


우: 네.

W: Yes.

현: 왜정 때 들어가서 있었어요. 그리고 6.25 사변 때는 졸업반이었습니다. 1950년 12월 1일날이요. 제군민 명으로 입대를 했죠.

H: I went to there from the time of the Japanese reign and I was in the graduating class during the Korean war. It was December 1 in 1950. I was enlisted under the order of the nation.

우: 잠깐 그.. 그 전에요.

W: Oh, wait. Before then

현: 네.

H: Yes.

우: 해방이 됐을 때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셨었죠?

W: At the time of independence, how old were you?


우: 45년이니깐, 13살?

W: You were born in 1945.. then 13?

현: 그렇죠.

H: Yes, I was.

우: 네.

W: Ok.

현: 중학교 1학년 때에요.

H: First year in middle school.

우: 중학교 1학년 때입니까? 그 때 상황을 좀 얘길 해주시겠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고, 무슨 일이 있었고.

W: You were? Could you describe how it was? How did people think and what happened?

현: 그 땐 뭐 아무것도 몰랐었죠. 그리고 학교에서 8월 15일까지 근로 봉사를 했으니까요. 그래가지고 8월 15일날 해방됐다고 해서 그냥 광화문까지 걸어 나와가지고,

H: Nobody knew anything. We did labor service at school until August 15. And it was announced that we were released on August 15, so we just walked out to the Gwanghwamun Gate.


현: 우린 광화문까지 걸어 다녔거든요. 그래서 오니깐 만세를 부르고 사람들이 난리더만요. 그래서 그렇게 지냈어요.

H: We used to go there on foot. When we got there, all the people shouted “Hooray” and it was so crowded. That’s it.

우: 그 때 당시에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뭐 이런 논쟁이 없었나요?

W: Wasn’t there any debate on communism or democracy?

현: 그런 건 몰랐죠, 저희는. 나이가 어리니깐 그런 건 전혀 모르고. 우리 형님 세대는 그걸 알았어요. 우리 형님은 저와 같이 경기도상을 나왔는데,

H: We had no idea since we were young. My older brother’s generation paid attention to it. He also graduated Gyeonggi Commercial High school.


현: 태극기 운운하다가 걸려가지고 헌병대에 끌려 가가지고 혼났어요.

H: He had tough time since he was captured by the military police due to mentioning the Korean flag issue.

우: 태극기 훈이요?

W: Korean flag?

현: 태극기요.

H: Korean flag.

우: 태극기를 흔들다가?

W: Waving the flag?

현: 아니요. 태극기를 논쟁을 하다가.

H: No, he joined debate on the flag.

우: 아~

W: Uh-huh~

현: 그 때 학생들 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그게 발각돼가지고 헌병대에 끌려가가지고요, 죽다 살아났어요.

H: There was the debate between students and it was uncovered, so he was captured by the military police. He was about to be dead.

우: 그 45년 뒤에 미군이 한국으로 주둔을 했죠?

W: After that in 1945, the U.S. forces were assigned to Korea, right?

현: 네.

H: Yes.

우: 미군을 보셨습니까?

W: Did you see them?

현: 그럼요.

H: Of course.

우: 네. 어땠습니까, 그 때, 반응이?

W: How was it, the reaction at that time?


현: 그 땐 뭐 코 큰 사람이니깐 그런가보다 했죠, 뭐. 그때 뭘 압니까?

H: Well, we just considered them as those who had big noses, nothing more than.

우: 네.

W: Uh-huh.

현: 서울에서 있다가 미아리 고개 저 뭐에요, 탱크 소리가 나고 그래서 그제서야 깜짝 놀란거죠.

H: When I was in Seoul, from Miari Gogae(Ridge), we heard the sound of tanks, then we were surprised.

우: 그 때까진 전혀 안 움직이셨어요?

W: Until then, you didn’t move at all?

현: 그 전에는 뉴스 듣고 뭐 전쟁이 났다는 소리만 들었었죠.

H: Before then, we just heard news that the war occurred.

우: 그럼 어떻게 반응하셨어요? 어땠었어요?

W: How did you respond then? How was it?

현: 그 땐 뭐 무의미하게 있었습니다.

H: Well, I was there meaninglessly,


현: 큰일났구나,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H: thinking that I would be in big trouble.

우: 그리고 실제로, 미아리 쪽에서 탱크 소리를 들으셨어요?

W: Did you actually hear the sound of tanks from Miari?

현: 그럼요.

H: Of course.

우: 아…

W: Mm-hmm.

현: 가서 구경도 하고 그랬는데요, 뭐.

H: We went there to see them.

우: 북한 탱크를요?

W: Those tanks from North Korea?

현: 네. 네. 그 저.. 큰 길에 나가서 탱크 가는 거 구경도 하고 그랬어요, 그 때.

H: Yes, we did. We went out to street to see those tanks moving.

우: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W: Wasn’t it dangerous?

현: 그런 건 몰랐어요. 그땐 어렸으니깐. 뭐 겁이라는 건 몰랐으니깐 그 때는.

H: We had no idea since we were young. No fear at that time.


우: 북한군이 뭘 어떻게 하지 않았습니까? 해코지를 한다던지.

W: Wasn’t there anything the North Korean soldiers did? Any threats or so.

현: 아니요. 그러고 들어와서는 다신 꼼짝도 안 했죠. 그걸 보고 난 다음부터는 꼼짝도 안 했어요.

H: No, they didn’t. But after then, we never went out but just stayed at home.

우: 그래서 서울에 계속 계셨습니까, 피난을 가셨습니까?

W: So, did you remain in Seoul, or evacuate?

현: 아니요. 피난 갔죠.

H: We evacuated.

우: 언제 가셨어요? 기억하세요?

W: When? Do you remember?

현: 어… 언제 갔다고는 기억을 못하는데, 학교에서 하급생들이 집에 부르러 왔더라고요. 학교를 나오라고.

H: I can’t remember when it was, but remember that underclassmen came to take me to school.


현: 그랬더니 이 놈들이 의용군으로 끌려갈려고, 붙들어 가려고. 그래서 걔네들한테 붙들려서 광혜 국민학교를 갔어요. 그게 의용군 모집하는 데에요. 그래서 광혜 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는데 비행기가 왔다고요. 그래서 옳다, 잘됐다 해가지고 담대 넘어서 도망간 거죠. 그래가지고 간 게 남쪽으로

H: And it turned out that they did in order to put us in the volunteer troops. So I was taken to Gwanghye elementary school where volunteer soldiers were collected. When I stood in the school yard, an airplane came down. I thought it was the right time to run away so I jumped over the wall. After that I went down


현: 남쪽으로 해서 대구를 내려간 거에요.

H: to the south, to Daegu.

우: 혼자요?

W: Alone?

현: 아니요. 친구하고요.

H: No, with my friend.

우: 그럼 가족은요?

W: What about your family?

현: 가족은 모르죠, 뭐. 가족 생각 합니까? 그 때는 내가 장남도 아니고 차남이니깐. 그래가지고 대구 가서 갈 데가 있어요?

H: I couldn’t care. How could I think of my family at that time? And I wasn’t first but second son. There was nowhere to go in Daegu.

우: 아니, 대구까지 어떻게. 걸어서 가셨어요?

W: So, how did you get there, on foot?

현: 걸어갔죠.

H: On foot.

우: 그것 좀 설명해 주세요. 밥이나 이런 건 어떻게 하고 어디에서 주무셨어요?

W: Then could you describe what you ate and where you slept?

현: 뭐 굶다시피 하는 거죠. 길거리에서 자고 뭐. 엉망이죠 뭐

H: Well, almost starved and slept on the street. What a mess!


현: 대구에서 갈 데가 있어요? 그래서 낙동강 전투에 들어갔어요. 우리요. 그 때 김상훈씨가 총사령관이었었거든요.

H: There was nowhere to go in Daegu. So I had to join the Nakdong-river battle, and there was Mr. Kim Sanghoon who was the commander-in-chief.

우: 낙동 전투에 들어갔다는 게 의용군으로 들어가셨다는 거에요?

W: You mean you joined the battle as a volunteer soldier?

현: 아니요.

H: No.

우: 아니, 그러니깐

W: So, you mean

현: 학도병으로 들어간 거에요.

H: As a student soldier.

우: 학도병으로? 네.

W: Student soldier? Ok.

현: 네. 들어갔는데 군번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래서 낙동강에서 있다가 그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다 하고 난 다음에

H: Yes. When I was there, we didn’t get anything including military serial number. So, after the Nakdong-river battle and Operation Chromite led by general Macarthur,


현: 얘들이, 인민군들이 전부 도망간 모양이에요. 그래서 우리보고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거기서 집에 오니깐 비참하죠 뭐. 옷이란 건 몇 달 동안 빨아 입지도 않고. 새카맣고. 그래서 어떻게 기여이 어떻게 어떻게 해서 집에 돌아왔어요.

H: all of North Korean soldiers ran away. So we were allowed to go home. When we arrived at home, we looked so terrible since we couldn’t do the laundry, so it was dirty. Anyway, we arrived at home finally.

우: 그런데요, 학도병으로 그러면 낙동강 전투에서 직접 참전하신 거죠?

W: So, you joined the Nakdong-river battle as a student solider by yourself?


현: 네, 네.

H: Yes, right.

우: 훈련 받으셨나요?

W: Did you get trained?

현: 훈련 안 받았죠.

H: No, we didn’t.

우: 총은 쏘실 수 있었나요?

W: Did you know how to fire a gun?

현: 그럼요. 우리는 왜냐하면 학교에서 그 군사훈련을 받았어요, 그 때는.

H: Course I did, because we got military training at school at that time.

우: 네.

W: You did.

현: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린 군사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할 수가 있었다고요. 그래서 총도 실질적으로 쏘진 않았지만 쏘는 방법은 다 알았죠.

H: So, whatever happened, we could take a measure since we got military training. Even though we didn’t have any chance to fire a gun actually, we knew how to do.

우: 실제로 전투를 처음 참여하셨을 때

W: Could you describe how you felt


그 기분하고 실제로 그때 그 전투 상황을 좀 얘기를 해주세요.

W: When you first joined the battle and the situation thereof?

현: 그때는 그걸 모르겠어요. 지금 뭐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 때는 무기라고는 38식하고 99구식 밖에 없었으니깐. 학도병한테 지급한 무기라는 건요. 낙동강에서 그렇게 고생을 하고 그리고 집엘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그 위에 하는 얘기가 후배 아이들한테 하는 얘기가 이렇게

H: Well, I don’t know and I don’t want to think of that. At that time the weapons we had only Type-38 Arisaka and Type 99 Arisaka Rifle, which were supplied to student soldiers. We had hard time in the Nakdong-river and came back home. And to the juniors, we who joined the battle let them know


현: 인민군들은 무참하다. 이게 공산군이다. 정신들 차려라. 그러고 말로 많이 했죠. 우린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너희들은 편하게 있었다. 편하게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더 정신 차려라. 그런 식으로 얘기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때 군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근거라는 게 없어요.

H: how cruel the North Korean soldiers were and how they, the communists, did. So, we emphasized that we had to wake up. Also we said that how tough our lives were there compared to them who didn’t experience the battle but were comfortable. So, we kept saying that it was essential for us to be awake. Many times we said like that. But we didn’t have anything including serial number. It means we didn’t have anything to prove what we did.


현: 그래가지고 그냥 집에 왔는데 집에 와가지고, 집에 오니깐 제국 용병 소집장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한국군으로 정식으로 들어간 게 1950년 12월 1일날이요. 12월 1일날 소집 장소가 비원 앞에 있죠? 비원. 비원 앞에 광장이 소집 장소에요.

H: So, when I came home, there was my draft notice. So it was December 1, 1950 to officially join the Korean forces. On December 1, we were called to a place before “Biwon”(“the Secret Garden”). We were called to the square before the Biwon.


현: 소집 장소에 가보니깐 그때 뭐 병사부 사령부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 양쪽에 매표소요. 거기서 병사 업무를 보더구만요. 그래서 인제 소집장 내밀고 거기서 이제 수속 해가지고 그래갖고 어딜 갔냐면 남산 국민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하고 잤어요. 남산 국민학교에서.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이튿날 기차 타고 대구로 내려갔다고요.

H: When I got there, there was nothing such as headquarters, etc. There were ticket offices at both sides where they dealt with military affairs. I submitted the notice and I went to Namsan elementary school after procedure. I slept there. And the next day, I went down to Daegu by train.


현: 대구가 어떻게 생긴 건 모르잖아요. 대구도. 대구 내려가니깐 방직 공장이라고 그래요. 우리가 간 데가. 보니까 전부 우리 학도병들만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다 모였더라고요.

H: We had no idea how Daegu looked like. When we arrived in Daegu, we went to a textile mill. When I looked around, I could find out those student soldiers were all my school mates.

우: 아는 분들이 있었습니까?

W: Were there soldiers you knew?

현: 아이~ 많았죠.

H: A lot.

우: 아…

W: Uh-huh.

현: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라고 서울서 큰 놈이 왜 아는 사람이 없겠어요. 맨 있죠 뭐. 너도 왔구나 너도 왔구나 이래가지고.

H: Since I was born and grew in Seoul, there were a lot I could recognize. We just said hello to each other there.


현: 만나가지고 그래갖고 방직 공장에 갔었어요. 그게 이제 훈련소죠. 근데 가가지고 무슨 전투 훈련 뭐 이런 걸 한 것도 아니고 우린 학도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저 한 바퀴 이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형식만 이렇게 취해가지고 그래가지고 한 보름동안 한 2주정도 그러고 지내다가

H: Anyway, we went to the textile mill, which was a training center. But we didn’t get any battle training, since we already got the training of student soldiers. So, it was kind of formal process and after a while about 15 days, two weeks,


현: 12월 20일경에 출동을 했어요, 거기서. 12월 20일경에 군번 받아가지고 정식으로 군번 받아가지고 출동을 했다고요. 그래가지고 대구 역전 광장에 모였는데 그때 그 대구 부녀회에서 아줌마들이 왔어요. 막 울고 환송을 해주더라고요.

H: We moved out on about December 20. On December 20, we were officially given the serial number and moved out. When we got together in the square before the Daegu train station, there were a lot of ladies from women’s society in Daegu. They saw us off while crying.


현: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렇게 눈물이 나와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서울 간다고 해서 우린 좋다고 했어요. 서울까지 용산역으로 해서 기차가 빠꾸를 해서 춘천역으로 가더라고요. 춘천쪽으로 가더니 가평에서 차가 딱 서는 거에요.

H: Whenever I think of that, it still makes me cry. We moved by train. We were happy since we thought we were going to Seoul. But the train departed for Yongsan station and it turned back to Chuncheon station. It headed for Chuncheon and stopped at Gapyeong.


현: 그래가지고 병력 반이 내리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이 사람들은 6사단 7연대로 배속이 된다고 그러는 거야. 그 때 그 때 그 무슨 전투야, 거기로 참가를 한대요. 그래서 반은 인제

H: And half of soldiers got off. We heard that they would be assigned to the 6th division, 7th regiment. They were supposed to join a battle which was… well, anyway the half of us

우: 가평에서 내리고.

W: got off in Gapyeong.

현: 가평에서 반 내리고 반은 춘천으로 갔어요. 그러니까 난 이제 춘천으로 갔다고요. 춘천으로.

H: And the rest went to Chuncheon. It means that I went to Chuncheon, to Chuncheon.


현: 그래서 반 가평에서 내린 사람들은 사천 전투에 투입됐던 거라고요. 거의 다 전멸됐어요. 근데 나는 이제 7사단에 가가지고 춘천 사범이 7사단 사령부더라고요. 그래 거길 딱 가니깐 밤인데 고등학교 이상 나와 이러더라고. 이상 나온 사람들 나오라고. 그래서 나가니깐 거기서 추리더라고요.

H: The half getting off in Gapyeong were put in the battle of Sacheon and almost of them were dead. I was assigned to the 7th division, and I realized the headquarters of the 7th division were in Chuncheon. When we arrived at night, they called those who were educated in high school or more among us, and we were picked out there.


현: 그래서 사단 사령부 각 부처에 두 명씩 붙여주고 헌병대 붙여주고 또 우리 통신대 붙여주고 근데 난 통신대로 갔어요. 그래갖고 그 때부터 고생하는 거에요. 그러고 있다가 얼마 안 있다가 그러니까 51년도 1월 1일날이요. 1월 1일날 춘천서 후퇴를 하게 됐어요. 후퇴를 하는데 춘천 사범서 후퇴를 하는데

H: Two were assigned to each department of the headquarters, to military police and to signal corps, and I was assigned to the signal corps. From then, our hard times began. Few days later, it was January 1, 1951. On January 1, we had to retreat from Chuncheon. From the Chuncheon base,


횡성을 갔어요. 그 때. 나는 어떻게 운이 좋게 7사단 통신부의 수송부로 배치를 받았어요. 그 선임하사가 야, 넌 저기 앞에 조수로 붙어라. 운이 좋았죠. 그러니깐 걷지 않게 하느라고 선임하사가 그렇게 해준 거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 많은데 조수니까 뭐 어떻게 해요.

H: We went to Hwengsung. Luckily, I was assigned to transportation unit of the 7th division’s signal corps. My senior sergeant ordered me to serve as an assistant. I was lucky since he did so as not to make me walk. There were a lot of people and I was an assistant, so what could I do?


비집고 이제 차를 타고 횡성을 갔었어요. 횡성. 횡성을 갔는데 그만 포위당해가지고 나가질 못하는 거에요. 그러고 하루 있었는데 포위망 뚫었다고 그래 보급이 있어요. 뭐 있어요. 비행기가 와서 낙하산 보급을 해주더고만요. 그래서 그거 먹고 있다가 하루 쉬니깐 뚫었다 이거야. 그래가지고 원주로 해가지고 어디로 갔냐면 영월로 갔어요, 영월.

H: I just squeezed into the truck heading for Hwengsung. Hwengsung. On our way there, we were besieged. After a day, the siege was broken through and there were supplies. Those were supplied by parachutes from the planes. So, we could stand with the supplies and after a day, the siege was broken. And we stopped by Wonju to get to Yeongwol.


현: 영월 발전소가 우리 7사단 사령부였었다고요. 근데 영월을 가니깐 우리 사단장이 우리 연대가 어디로 갔는지를 모른대요. 통신대니깐 무선차가 육본망 있고 연대망 있고 각 예야 부대망이 있고 이렇게 통신차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단장이 연대가 어디갔는 줄 모르니깐 연대를 찾느라고 이런 무전차 안에서

H: Yeongwol power plant was the headquarters of 7th division. But when we arrived there, our division commander said that he had no idea where our regiment was. Since we were signal corps, we had radio vehicle for network with army headquarters, regiment and units, which was a communication vehicle. However, the division commander didn’t know where our regiment was. So, we almost stayed all night.


현: 밤을 새다시피 했더라고요. 며칠 동안. 그래가지고 우린 어딜 갔었냐면은 밤치요. 영월군 탄광에 들어가는 광부들 탄광에 들어가는 데가 밤치라는 데에요. 그래서 거기 있었거든요. 그래가지고 그 때부턴 뭐 어떻게 된 건지 일루 가면 절루 가고 절루 가면 절루 가고

H: to find them in the car for several days. And we went to Pam-chi where the minors in Yeongwol-gun worked, and we were there. From then, we just followed the directions to move having no idea where to go.


현: 전진했다 후퇴했다 전진했다 후퇴했다 그 바람에 강원도 일대를 안 돌아다닌 데가 없어요. 그래갖고 나중에 후퇴할 적에 우리 경상도 춘양까지 내려가 있었다고요. 그러니까 그 고생이라는 건 말도 못하는 거죠. 그 때. 그러니깐 쫄병에서 계급장도 달아보지도 못하고 명찰 하나 제대로 달아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니깐 뭐가 뭔지를 모르고

H: We repeated going forward and backward. So, there was no place we didn’t reach in Gangwon-do province. So we retreated to Chunyang in Gyeongsang-do province. How terrible it was. At that time, I was a private soldier without ranks or badge. Without understanding of the situation,


현: 그런 와중에 그런 군대 생활을 시작한 거에요. 전방에서 어떤 때는 포대 옆에서 잠도 자고 포 펑펑 쏘는데 그 옆에서 잠도 자고 거기서 밥도 먹고 전진도 했다 후퇴도 했다. 이제 상관이 전진하라고 하면 전진하고 후퇴하라고 하면 후퇴하고. 그런 생활을 몇 년을 했어요.

H: I just started my military service. In the frontline, sometimes I had to sleep beside the artillery unit. While they were shooting, I just slept, had meals there and went forward and backward. According to orders of our senior, we just went forward and backward for about few years.

우: 음식은 뭘 주로 드셨어요?

W: What food did you usually have?

현: 음식은 그 취사반에서

H: For food, We had meals


현: 밥해준 밥도 먹고 주로 이제 밥하고 국하고 한 그릇씩이거든요. 그거 없으면 양놈들 레이션 주면 걔네들이 막 줘요. 그것도 먹고 뭐 다 닥치는 대로 다 먹었어요.

H: made by the field mess, mainly a bowl of rice and soup. If that couldn’t be served, the foreign soldiers gave us the rations they had. So, we had anything we had as well as the rations.

우: 미군들하고 관계가 어떠셨어요?

W: How was the relationship with the U.S. soldiers?

현: 좋았어요. 그 때는요. 미국 아이들이 그 저 뭐야 막 줘요. 관물 받고 박스로 막 줘요.

H: It was good, at that time. They gave us many things including a box of articles supplied by government.


현: 그 열어보면 작업복도 미제가 막 나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린 미제만 입고 있었다고요. 그렇게 개인들이 인심이 좋았다고요.

H: When we opened it, there were the fatigues made in the U.S. inside. So we could wear clothes only made in the U.S. Each of them was so kind.

우: 그리고 잘 대해줬나요?

W: Were they kind to all of you?

현: 그럼요. 잘 대해줬어요. 아주 우리가 그 어리다고 해서 시오리 시오리 그러더라고요. 그 새끼들이. 군번은 0158017인데 제군번을 또 받았어요. 0736570으로요.

H: Sure, they were. And they called us “Shiori, Shiori” since we were young. My serial number is 0158017, but I also got another one, 0736570.


현: 원 대구에서 받은 건 0158017이에요. 신안까지 내려간 게 아마 7사단에서 처음일 거에요. 그래가지고 쭉 북진해서 올라가다가 어서 브레이크가 걸렸느냐 하면 나는 인제에 가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 7사단이 원통지에서 망하다시피 했다고요. 전멸하다시피 했다고. 그 때 우리 7사단, 사단지를 뺏겼다고요, 걔네들한테.

H: What I got in Daegu is 0158017. Maybe the 7th division was the first to go down to Shinan. We kept going up to the north and stopped in Inje. The soldiers of our 7th division were almost dead, almost completely destroyed. Since our base was taken by the enemies.


현: 그 때 중공군들이 내려온 거에요. 단양으로 해서 춘양까지 내려간 거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후퇴하고 어떻게 전진한 건지는 몰라요. 통신부장이 얼굴도 못 볼 때가 많아요. 중대장도 얼굴 못 볼 때가 많고요. 우린 그렇게 군대 생활을 그렇게 했습니다. 양구에 있었는데 참.. 우린 많이

H: The Chinese troops came down. From Danyang to Chunyang. I have no idea how to retreat and go forward. Many times we couldn’t see the face of the commander of the signal unit. Neither did the company commander. That is how we lived during the service. We were in Yanggu… we opposed


현: 반대를 했죠. 이게 휴전되면은 이게 통일이 안 된다 해가지고 많이 반대를 했어요. 근데 군대에서 반대를 하면 뭐합니까. 그래 그 때 한참 전투가 심했어요. 우리 7사단 옆에 8사단이 있거든요. 8사단이 한 70리를 후퇴했어요. 그래가지고 이 70리를 밀고 올라가기 위해서 사방 거리 근 한 20개 연대가 집결을 했었다고요.

H: a lot since if the ceasefire was agreed, the unification couldn’t be realized. So we opposed a lot, but the voice of soldiers wasn’t that effective. At that time there were a lot of severe battles. There was  8th division next to our 7th division. They retreated about 28km. So, to take it back, about 20 regiments around assembled.


현: 난 거기에는 안 꼈지만 난 통신대니깐 자주 왔다갔다 하거든요. 그래서 그 상황을 잘 알죠. 그러고 있다가

H: I didn’t join, but I was a soldier of the signal unit. So, I had to stop by there frequently and got to know the situation there.

우: 그러니까 한 뼘의 땅도 안 뺏기려고..

W: To secure a land as much as possible.

현: 그럼요. 그래서 이렇게 70리를 후퇴했다고요. 그러니까 지대를 한 뼘이라도 더 찾으려고 그게 휴전 당시에요. 이 양구 저수지를 두고서

H: Sure. They retreated 28km. So, they tried to take it back as much as possible at the time of the ceasefire. From Yanggu reservoir,


현: 70리를 8사단이 후퇴했다고요. 그래서 이걸 밀고 올라가기 위해서 아군이 아주 갖은 힘을 다 썼어요. 그래서 현 휴전선까지 밀고 올라간 거라고요.

H: 8th division retreated about 28km. So, to take it back, our forces made every effort they had. So we could take the land up to the current ceasefire lines.

우: 그 때 8사단하고 미군이 같이 했나요, 아니면 그 지역에서 외국군은 누가 있었나요?

W: Did the U.S. forces join the battle with 8th division? Or were there any other foreign troops?

현: 외국군은 모르겠어요. 우리 7사단 옆에 8사단이 있었거든요. 그게 왜 또 관심이 많이 가느냐면은 우리 형님이 8사단 10연대에 있었거든요.

H: I have no idea about foreign troops. There was 8th division next to our 7th division. I just had to pay attention to it since my older brother was in 10th regiment, 8th division.


우: 아~ 형님도 같이 참전을 하셨었어요?

W: Really? Your older brother also joined the war?

현: 네. 형님도 같이 참전을 했죠. 한 명은 8사단 10연대에 있었다고요. 우리 형님은 나보다 입대연월이 빨라요. 그러니까 피난통에 군에 들어갔다고요. 그러니까 형님이 옆에 8사단에 있으니까 내가 관심이 더 많을 수밖에.

H: Yes, he did. He was in 10th regiment, 8th division. He joined earlier than I did. He joined during the refuge. My older brother was in 8th division so it was natural that I cared more.

우: 형님을 만나보신 적이 있나요?

W: Did you see your brother there?

현: 네. 거기서 만났어요.

H: Course I did.

우: 아.

W: Uh-huh.

현: 저기 저 양구 536 고지 지나 문등리라고 있어요. 거기서 형님을 만나봤어요.

H: There was a hill called as Mundeungri near Hill 536 in Yanggu. I met him there.

우: 그럼

W: Then,


우: 만날 때 장면이 어땠어요? 어떻게 만나셨어요?

W: How was it? How did you meet him?

현: 말도 못하죠. 만난 거는 아버지한테 편지 받아보고 알았는데.

H: What can I say.. It was possible thanks to the letter from my father.

우: 오 그 당시에도 편지가 왔다 갔다 했어요?

W: Was it possible to send and receive letters at that time?

현: 그 때는 편지가 왔어요. 내가 어떻게 연락이 돼가지고 아버지한테 편지가 왔는데 네 형이 10연대에 있다는 것만 가르쳐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10연대에 찾아갔죠. 우리 바로 인접 부대니깐. 그게 어디냐면 양구 536고지 너머

H: Well, only I could receive the letter. Somehow we could be in touch and I got the letter from my father. He mentioned that my brother was in 10th regiment. So, I went there to find him since it was near our division. It was over Hill 536 in Yanggu,


현: 문등리라고 있어요. 거기 10연대가 있더고만요. 그래서 가서 형 만날적에요 형하고 아무 말도 못했어요. 둘이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다고. 그렇게 형을 거기서 만나가지고. 그 후부터는 전화 연락도 자주 하고 그렇게 됐어요. 지금 형님은 돌아가셨지만

H: a hill called as Mundeungri. There I found 10th regiment. When I met him, we couldn’t say a word. We just hugged each other and kept crying. After that, I could contact him a lot. Currently he is not here since he already passed away, but


현: 참.. 그 비참한 얘기는 뭐 이루 말을 못하겠어요. 비참하게 그렇게 전투를 하고.

H: It was so sad story. It was terrible to join the battle.

우: 형님도 그러면 전쟁 동안에 다 살아남으신 거죠?

W: Then your brother also survived in the war?

현: 살아남고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H: Yes, he did. He passed away lately.

우: 얼마 전에 돌아가셨나요?

W: Did he?

현: 네.

H: Yes.

우: 휴전이 됐을 때,

W: At the time of the ceasefire,

현: 네.

H: Uh-huh.


우: 그 전쟁 중에 위험했던 적이 있으셨나요?

W: Was there any moment you were in danger during the battle?

현: 아이 많죠.

H: Many times.

우: 예를 들면.. 아주 죽을 뻔 하셨던

W: Please tell us some episodes that you were about to lose your life or..

현: 포위망에 들어설 적에는 그냥 뭐 죽은 거나 다름 없었으니깐.

H: When we were besieged, we were about to die.

우: 영월에 가셨을 때?

W: In Yeongwol?

현: 영월이요?

H: Yeongwol?

우: 네. 영월에 가셨을 때 포위당했다고 그러셨죠.

W: Yes. You mentioned that you were besieged there.

현: 어딘지는 모르겠어요.

H: I don’t know where it was.

우: 네.

W: Ok.

현: 아홉사리 전투에서도 그랬고 우린 뭐 강원도 오대산 전투에도 그렇고.

H: Ahopsari battle, Odaesan battle in Gangwon-do province, and…


현: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H: There were too many to mention.

우: 한국군이 제대로 싸울만한 그 전력이나 경험이나 또는 지휘관이나 이런 면에서 그 때 한국군이 어땠습니까?

W: How were the ROK forces in strategy, experiences or leadership?

현: 예~잘 싸웠어요. 아주 용감해요. 잘 싸우고 이 전쟁이 벌어졌다 하면요. 지휘관이고 뭐고 없어요. 지휘관도 너 뭐 해라 이렇게 얘길 안 해요. 왜냐하면은 전방에서 하도 굴러먹었으니깐

H: We were so good, very brave. Every soldier was good at fighting. If the battle occurred, the role of commander became meaningless since every soldier had a lot of experiences in frontlines. So the commander didn’t give us orders.


현: 능구렁이가 다 됐거든요. 그러니깐 저쪽에서 이렇게 나오면 이쪽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다 아니깐. 뭐 중대장이 너 이래라 저래라 얘기 안 해도 다 알아서 다 해요.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단결이 잘 될 수가 없어요. 아주 우리 소대원도 그렇고 중대원도 그렇고 그렇게 단결이 잘 돼요. 그만큼 전투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그럼 벌써 50년

H: Since we knew how to handle. We knew what to do depending on the situation. So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commander to give orders since we did by ourselves. Also, we could be united better than ever. Our soldiers in platoon and company were united very well. It means we all joined a lot of battles. And then in 1950


현: 51, 52, 53, 내가 54년도에 제대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휴전할 때까지 4년 동안을 그 고생을 했으니 뭐 좀 많이 했겠어요.

H: 1951, 1952, 1953 and then I was released in 1954. For about 4 years, I had so much terrible times experiencing a lot of battles.

우: 그래서 언제 미국에 오시게 되셨습니까?

W: Then when did you come to the U.S.?

현: 저는 84년도 4월달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하와이에서 3년, 캘리포니아에서 한 20년. 그리고 여긴 한 10년 가까이 돼요.

H: I came in April, 1984. I lived for 3 years in Hawaii, and 20 years in California and I’ve lived here for about 10 years.


우: 네. 여기에 한국전, 6.25 참전한 한국 분들 많이 계십니까?

W: Ok. Are there many veterans who joined the Korean war?

현: 네, 많아요.

H: Yes, there are many.

우: 몇 분이나 계신가요?

W: How many?

현: 지금 우리가 보훈처에 보고한 인원이 42명이에요. 한국 돈으로 12만원, 그거 받고 있어요.

H: There are 42 who were officially reported to the MPVA. We have received 120,000 KRW.

우: 계속 받고 계시고요?

W: Are you still receiving that?

현: 네.

H: Yes.

우: 그게 아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W: Well, we heard that the amount is probably same that in Korea.

현: 네.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H: Yes, right. I was told.

우: 네. 그리고 미국도 워낙 veteran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에서

W: In the U.S., since there are too many veterans


우: 이렇게 돈을 주거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W: there must be little compensation or so.

현: 네.

H: Yes, right.

우: 그 전투하셨을 때 부상당한 적은 없으셨나요?

W: Have you been wounded in battles?

현: 부상은 안 당했어요.

H: I was not wounded.

우: 아, 그 3년동안 전투를 하시면서?

W: Not once in those battles for three years?

현: 네. 네.

H: No, I haven’t.

우: 천운을 타고나셨네요.

W: You were so blessed.

현: 우린 그랬어요, 그때. 제발 좀 파편이라도 하나 맞아서 후방으로 이송해갔으면 좋겠다고.

H: We hoped that we could be hit by shrapnel to be assigned to the rear.

우: 그만큼 힘드셨던 거죠?

W: It might be terrible that much, right?


우: 우리 한국의 후세대들에게 한국 전쟁의, 6.25 전쟁의 교훈.

W: Then would you give our next generation in Korea any lessons of the Korean war?

현: 세상 똑바로 살면서 우리가 고생한 걸 갖다가 기초를 삼아서 니들도 똑바로 살아라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우리 애들한테도 그래요. 우린 6.25 때 먹을 게 없어가지고 굶다시피 했는데 내가 오대산에서 겪은 얘기를 해요. 왜냐하면은 오대산 넘어 을지동이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H: I just hope that they will live well remembering how difficult our lives were, Korean, were. I always say to my children that at that time, since we had nothing to eat we were starved. So, I give them my story in Odaesan. Well, over the Odaesan, there was a village called Eulji-dong.


현: 근데 거기에 집이 두 채가 있어요. 근데 거기엔 노인네들만 사는데 차도 못 보고 기차도 못 보고 한 노인네들이에요. 근데 왜 우리가 거길 가게 됐느냐면은 우리가 통신대니깐 의무가 통신 가설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근데 그 당시에는 이런 핸드폰이 없고

H: There were two houses. There were only the elderly who had never seen any cars or trains. The reason we got there was we were signal corps, so we had duty of communication construction. At that time there wasn’t cell phone like this.


현: 그저 유일하게 통신망이라는 건 줄밖에 없었다고. 그것도 120선이 아니라 110선이에요. 굵은 선이에요. 그래서 이걸 차에다가 잔뜩 싣고 쫄병들 사역병을 풀어다가 모집을 해가지고 중대에서 사역병을 모집해가지고 월정사 아시죠? 월정사까지 3 cord를 싣고 가서

H: So, the communication net had to be connected by wires, not 120 but 110. It was very thick wire. So, we had to load them into the car and collected private and fatigue duty soldiers. Do you know woljeongsa temple? We took 3 cords there.


현: 거기서 와이어를 이렇게 해가지고 하나씩 메가지고 월정사부터 그걸 풀면서 오대산을 넘어가는 거에요. 가설을 해가면서. 그래가지고 오대산 꼭대기에 가면 눈이 이렇게 깊어요. 가가지고 을지동, 을지동이라는 데 가가지고 거기 우리 전방 수색대가 있었거든요. 그럼 가면서

H: We carried those wires on our shoulders to there. And from the woljeongsa, we reconciled them while moving over Odaesan and constructed communication. At the mountaintop, there was snow piled too high. And we went to Eulji-dong where our forward search unit was. While moving,


현: 건빵 두 봉지 주면 그걸 먹으면서 그 계곡에 물이 좀 맑아요? 그걸 먹으면서 가면 한참 가다보면 시커먼게 있어서 보면 인민군이 물 먹다가 총 맞아서 죽은 거. 그럼 그걸 치우고 또 그 물 또 마셔가면서 또 올라가요. 또 한참 가면 또 인민군이 또 있어요. 치우고 또 올라가서 먹고. 그래도 그거 하나 개의치도 않았어요. 우린. 그래서 그런 얘기

H: We ate two bags of snacks and you know what? How great the water quality of the valley was. We moved having the snacks for a while and found out something black, a North Korean soldier who was shot while drinking water. Then we just took the dead body away and drank water and moved up again. After a while, we found another dead body again, then took it away and drank. Anyway, we didn’t care at all. So, I just try to share those stories


현: 그렇게 고생해가면서 우리가 나라를 지켰다 하는 얘기를 손자들한테 얘길 많이 해줘요.

H: with my grandchildren a lot to let them know how we protected our country.